MBC 아나운서 김준상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메일에 적힌 첫 문장을 보자마자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수많은 시험에서 떨어지고도 단 한번 울어본 적 없었는데, 떨어질 때마다 가슴 속엔 많은 응어리가 맺혔던 모양입니다. 사실 면접을 잘 봤다는 느낌보단, 제 부족함을 많이 깨달은 시험이었기에 합격 통지가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정답이 없는 시험에 제 이야기가 얼마나 도움이 될 진 모르겠습니다만, 수많은 불합격을 경험하며 적어두었던 생각과 이번 MBC 공채를 보며 새롭게 느꼈던 것들을 적어볼까 합니다.

20131월에 처음 스피치랩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여러 군데 학원 상담을 받아봤지만, 듣기 좋은 말 대신 날선 지적을 해주셨던 이선미 원장님과 허정은 실장님께 믿음이 갔습니다. 모든 제자를 자식처럼 여겨주시는 이선미 원장님, 때론 누나처럼 작은 고민까지도 들어주셨던 허정은 실장님, 한결같은 미소로 맞아주셨던 정욱 쌤, 스피치랩에서 만난 전현직 아나운서 선생님, 그리고 같은 꿈을 꾸며 함께 달려온 친구들이 있었기에 32개월의 대장정을 웃으며 마무리할 수 있었다는 걸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전 스물일곱이란 늦은 나이에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방송반 경험도 전무했고 생명공학이 전공이었던 제게 아나운서는 생소한 직군이었습니다. 그 부족함을 채우는 것은 남들보다 좀 더 열심히 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번 지적 받은 부분은 두 번 이상 지적받지 말자.”라는 목표를 세우고 준비했습니다.

모든 수업을 녹음해가며 들었고 필요하다 생각되는 부분은 집에서 다시 들어보며 다음 시간엔 같은 지적을 받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물론 잘못된 습관들이 하루아침에 뒤바뀌진 않았지만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태도가 매 전형마다 한 차수씩 더 올라갈 수 있게 해준 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치렀던 공중파 아나운서 공채 결과입니다.

20132MBC 공채 1차 카메라테스트 탈.

201312KBS 공채 2차 필기시험 탈

20148SBS 공채 3차 실무면접 탈

201410KBS 공채 4차 최종면접 탈

201510KBS 공채 4차 최종면접 탈

20161MBC 공채 최종합격

연습과 스터디로 채워지지 않는 부분은 수업으로 보충했습니다. 같은 분한테 지도를 받아도 제 수준에 따라 선생님의 지도 방식도 달라진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때론 같은 커리큘럼을 들었던 적도 있습니다. 수업은 준비기간이 늘어나면서 헤이해진 마음을 다잡는 데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수업이 진단을 받고 방향을 잡는 곳이라면 스터디는 그것을 채우려 노력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은 치열한 아나운서 공채를 즐길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201410KBS 공채에 입사한 이재성 아나운서, 박소현 아나운서 모두 그 시절 수업과 스터디를 통해 만난 소중한 친구들이었습니다.

면접장은 내가 살아온 시간들이 그대로 드러나는 곳이고, 면접관들은 그런 를 평가하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부족함을 채우려 노력했던 태도 그리고 좋은 사람들을 함께 쌓은 즐거운 기운들이 면접관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1차 동영상 평가

거의 대부분의 방송사가 모든 전형마다 등수가 정해지고 최종 면접까지 그 기록이 올라간다고 합니다. 그저 매 전형을 통과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아나운서 시험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최선을 다해야합니다.

꽤 많은 지원자가 영상을 찍기 위해 스튜디오를 대여하고 헤어메이크업을 받고 임했습니다.(저 역시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꼭 비싼 돈을 주고 스튜디오를 대여할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자기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로 삼은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야외에서 영상을 촬영하거나 독특한 장기자랑을 담아낸 친구들도 있었는데 한 친구는 독특한 영상으로 면접관에게 질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전형이 다 끝나고 나서 생각해봤습니다. “MBC에서는 원고 리딩이 아닌 자기소개를 영상으로 제출하도록 요구했을까?” 그저 뉴스를 잘 읽는 사람보다는, 지원자가 가진 매력을 통해 자질을 판단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2차 카메라테스트

카메라테스트는 프롬프터를 보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뉴스와 MC 두 가지 중 면접관이 무작위로 읽도록 했는데, 지원자의 첫인사 안녕하십니까, OOO입니다.” 를 듣고 지정해주셨습니다. 한 조에 총 열 명씩 들어갔는데, 면접장에 들어가는 순간 평가는 시작됩니다.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살짝 미소 짓고 있었습니다. 제 차례가 아닐 때에도 면접관 한 분 한 분을 쳐다보며 그분들의 기에 눌리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프롬프터는 카메라를 보고 원고를 읽어야 하니, 잘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읽을 때 표정도 중요하다 생각했습니다. 첫인사를 하고 나니 뉴스 원고를 읽으라 하셨고, 그 다음엔 MC도 한번 읽어보라 하셨습니다. 뉴스는 내용을 전달하는데 초점을 뒀다면 MC는 밝은 느낌을 보이려고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후 스포츠 중계까지 한 번 해보라고 하셨는데, 예상하진 못했던 요구사항이었지만 외우고 있었던 중계 멘트로 마무리했습니다.

A조와 B조 진행방식은 달랐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러 차례 원고 리딩을 시켜봤다고 해서 꼭 다음 면접에 올라간 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원고 하나만 읽고도 면접에 올라온 친구도 있었습니다.) 카메라테스트 이후 면접에 올라온 인원이 40명 남짓이었으니, 어느 방송사보다도 가장 치열했던 카메라테스트였던 것 같습니다.

3차 실무면접 + 필기(작문)

면접은 다대다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면접관은 총 여섯 분으로 아나운서 세 분, 다른 직군의 세 분이 앉아 계셨습니다. 2차 카메라테스트가 걸러내는 시험이었다면, 3차 실무면접은 건져내는 시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원자를 배려하기 위해 의자와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었고 물도 건네주셨습니다. 때때로 분위기가 무거울 땐, 농담도 건네시며 지원자들을 다독여주셨습니다.

하지만 질문은 의중을 파악하기 힘든 느낌이었습니다. 면접장에 들어서기 직전까지 들여다봤던 예상 질문들이 전부 휴지조각이 되어버렸습니다. 처음 한 두 번은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에 당황했고, 그 이후론 그냥 솔직하게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숨김없이 솔직하게 답변했던 질문들에만 반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답변을 최대한 짧게 하려 노력했습니다. 다대다 면접은 지원자 모두 욕심을 갖게 만듭니다. 그 욕심으로 답변을 길게 하기 시작하면, 하루종일 면접을 보는 면접관들은 분명 지루해 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다른 지원자가 4~5문장으로 말하면 저는 2~3문장으로 짧게 답하려 노력했습니다. 실제로 그 때문에 면접 총시간동안 제가 답변하는데 소요했던 시간은 다른 지원자들보다 분명 적었습니다. 끝나고 면접장을 나가는데, ‘오늘 한 얘기가 너무 없는데, 망한 것 같다.’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 간결함이 좋게 보였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필기(작문)

이번 MBC는 시사상식에 대한 시험은 따로 없었습니다. 이전에 준비할 때 써둔 논술, 작문 자료들을 보며 대비했습니다. 주제는 <인생에서 경험한 기적>에 대해 쓰는 것이었습니다. <기적이 없는 삶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내려 갔습니다. 어렸을 적 사고로 혼수상태에서 빠졌던 긴박한 상황으로 글을 시작했고 나는 그때 내게 주어진 기적의 총량을 모두 소모했다. 그래서 이렇게 끊임없는 실패를 경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실패를 모두 이겨냈듯 지금의 도전도 이뤄낼 것이다.” 이런 식으로 글의 주제를 풀어냈습니다.

4차 최종면접

최종면접은 MBC의 임원진들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실무면접과 동일한 다대다 면접으로 진행이 되었고 배려해주셨지만 중압감을 떨쳐내기 어려웠습니다. 저는 원래 어른들과 대화하는 걸 즐기는 편인데, 매번 임원면접에선 그게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대를 내려놓으려 노력했습니다. 이전 시험에선 최종면접에 나올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을 준비했다면 이번 시험을 앞두고선 주로 친구들을 만나 대화를 많이 나누며 좋은 기운을 많이 받아갔습니다.

특히 함께 언론사를 준비하는 아나운서, 기자, PD’지망생 친구들, 함께 방송했던 선배님들께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정말, “합격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내 자신이 변하기 위한 삶을 살아야겠다. 떨어져도 난 행복할거야.”라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래서 책을 더 많이 읽고 매일 일기를 써가며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신기하게도 면접에서 그런 생각들을 말할 기회가 몇 번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가장 슬펐던 순간이 언제냐?”는 질문이었는데 그때 친구와 나눴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과연 내가 아나운서가 될 수 있을까? 라는 확신이 서지 않을 때 가장 슬펐습니다. 작년 KBS최종면접에서 떨어지고 일반기업에 최종합격했을 때 친구가 해준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바라보던 문이 닫혔을 때, 다른 새로운 문이 열렸는데도 그 문이 열린 걸 발견하지 못한대. 내 생각엔 그 회사는 새로운 문이야 넌 거기 가야해.’ 그때 제가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새로운 문이 열린 걸 알아. 하지만, 지금 여기 닫힌 문에 내 손이 끼어있는 것 같아서 난 갈수가 없어.’ 하지만 그 말을 하면서도 이 시험에 합격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을 때 가장 힘들었습니다.”

좀 오그라드는 대화이기도 했지만, 실제로 나눴던 대화였습니다. 저는 모든 답변을 최대한 두괄식으로 말하려고 했습니다. 또한 당당하되, 겸손함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그 때문인지 면접 시간이 흘러갈수록 떨림은 사라졌고 좀 더 제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면접 후반, 부사장님께서는 제게 하나도 긴장 안한 거 같은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잘 본 면접이라 느껴지진 않았습니다만 준비했던 과정 동안에 정리했던 생각들이 좋게 전달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최종 합격을 했지만, ‘아나운서란 단어는 아직 많이 무겁습니다. 이번 전형을 통해 제 자신이 채워야 할 부족함을 많이 발견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20132월의 저는 MBC 카메라테스트 시험장에서 너무 긴장돼 다리를 벌벌 떨며 서 있었습니다. 그런 저를 보고 한 심사위원께서 피식 웃으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랬던 제가, 이제는 어떤 아나운서가 되어야할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아나운서를 꿈꾼 덕분에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그들에게 부족하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 과정 그 모두가 제겐 너무나 즐겁고 소중했던 순간들이었습니다. 그런 저의 정답은 과정을 즐겼던 데있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시험에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이 글을 읽으신 모든 분들이 자신만의 답을 찾는데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정답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건넬 수 있는 날이 오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