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영남권 아나운서 최현호

‘내려놓음’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움켜쥘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4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난 평소에 공부하는 시간보다는 공채 전형 기간이 가장 힘들었다. 카메라테스트 그리고 필기, 면접을 본 이후에 각 전형별 합격자 발표가 날 때까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하지 않았다. 매 시험마다 ‘이게 내 마지막’이라는 각오는 오히려 자충수가 됐다. 반드시 합격해야한다는 압박감을 배수진이라는 단어로 합리화했고, 모든 것을 갖춰야만 합격을 할 수 있다는 엉터리 공식 속에 시험을 치러왔다. 그래서 면접관 앞에서 더 잘하려 했고 욕심을 부렸다. 온 몸엔 힘이 잔뜩 들어갔고, 표정은 경직됐다. 그런 자세로 면접이 될 리 만무했고 된 적도 없었다.

시험을 준비한 지 어느덧 2년, 3년이 지났다. 2012년 가을, 부모님께 이제는 아나운서를 포기하고 내려놓겠다고 말씀드렸다. 원장님께도 다르지 않았다. “제 길을 가겠습니다”. 그리고 난 정말 생업을 위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1년 간 150여 군데가 넘는 곳에 지원을 했지만, 32의 늦은 나이에 날 받아줄 기업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2013년 12월 끝자락, 한 언론사 방송기자로 취업을 했다. 온 가족이 나를 얼싸안아 눈물을 흘렸고, 아버지는 나를 업고 온 집안을 돌아다니셨다. 그렇게 제 2의 인생이 시작됐다.

거짓말처럼 합격자 발표가 난 다음 날 ‘2013년 KBS공채’가 시작됐다. 웬일일까. 욕심이 나지도 않았고, 굳이 써야겠단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난 이미 직장이 있기 때문이다. KBS를 뒤로하고 난 여기저기 감사의 인사를 하러 다녔다. 그 때 원장님이 축하와 함께 건네신 한마디.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KBS 한번 써봐”. 못 이기는 척 입사 이틀을 앞두고 부랴부랴 원서를 썼다. 그리고 다시 KBS는 내게서 멀어졌다.

수습기자 생활은 정말 만만치가 않았다. 처음 입사하고 한 달간은 하루에 2~3시간 자는 것에도 감사할 정도였다. KBS를 따로 준비할 시간도 여력도 없었다. 매 전형 코앞이 돼서야 겨우 시험시간과 장소를 확인했다. 예전처럼 틈만 나면 스터디원들과 모의 면접을 하고, 끊임없이 카메라 앞에 설 수도 없었다. 심지어 시험 전날과 당일에도 시험을 어떻게 치러야 할지 고민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당장 주어진 그 날의 보도자료 처리와 취재에 여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석 달간의 전형기간 동안 난 카메라 앞에 뉴스를 딱 두 번 읽은 게 다였다)

특별한 준비를 하지 않았기에 면접관 앞에서 그 어떤 준비된 얘기를 할 수가 없었다. 그저 현재 어떻게 지내는지, 지금 무엇을 배우며 이것을 아나운서로서 어떻게 활용할지 정도를 얘기했다. 그런데 이게 답이었던가. 준비된 것이 없으니 면접에서 진짜 내 안에 있는 얘기가 나왔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 그게 면접관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전부였다. 예전처럼 면접장 앞에서 A4, 수첩에 적어 준비했던 자료를 꺼내보지 않았다. 없었으니까. 대신, 수년 간 공부하고 노력해왔던 내 자신을 믿었다. 마음을 비우니 시험을 앞두고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떨어져도 돼, 난 갈 곳이 있으니까..4년 동안 되지 않던 것이 오늘이라고 다를까’

겨우 시험을 치르고 난 후, 뒤도 안돌아보고 나는 다시 ‘본업’으로 돌아갔다. 예전처럼 발표 날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 이주일이 지나 어느새 KBS 최종면접이 목전에 다가왔다. 최종이라고 특별한 ‘기대(?)’ 하지 않았다. 특별한 ‘준비’도 하지 않았다. 최종도 이전 전형과 크게 다르지 않게 시험을 치렀다.

2014년 3월 24일 오전. 평소와 다름없이 난 정신없이 근무를 하고 있었다. 정오가 지나서.. 나는 ‘KBS아나운서’가 됐다. 미치도록 이루고 싶었던 내 꿈이 정말 느닷없이 다가왔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려놓았을 때 내 마음이 평온해지고 쓸 때 없는 힘이 빠졌다는 것을, 그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나다운 모습이라는 것을…

그리고 한 가지 더, 그들은 아나운서와 관련이 있든 없든 눈앞에 일과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치열하게 부딪혀 사는 모습 속에 묻어나오는 인간미를 기대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나운서는 항상 여유 있고, 근엄하게? 아니다. 나는 정신없이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취재를 하고 컴퓨터를 두드리다 시험장으로 달려갔다. 누구보다 쫓겼고 여유가 없었으며, 말끔하게 메이크업 받을 잠시의 시간조차도 허락되지 않았다. KBS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헤어왁스를 찍어 발랐다. 아나운서가 되겠다고 힘주고, 인위적이던 모습들은 모두 날라 갔다.

돌이켜보면 운으로 시작해 운으로 끝난 시험이다. 준비가 안 된 필기시험에서는 기자 수습을 하는 동안 다룬 내용이 논술과 상식에서 출제가 되는 등 매 전형마다 기적(?)적인 일들이 일어났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난 수년 간 쌓아온 모든 것을 쏟아 부을 수 있었던 가장 ‘편안’했던 시험이기도 했다. 다 내려놓고 난 후, 난 더 이상 내려갈 곳도 버릴 것도 없었기 때문에..두렵지 않았다. 두려움이 없으니 불안함과 떨림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카메라와 면접관 앞에서 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제야 KBS가 나를 허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