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아나운서 박상욱

안녕하세요, 스피치랩 식구 여러분!

2011 6 종합반, 스포츠캐스터반 수강중인 박상욱 학생입니다.

우선, 이렇게 수기를 남기게 되어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_

여지껏 제대로된 준비 없이 지내다 뒤늦게 스피치랩과 함께하던 중에 jTBC 공채 1 아나운서라는 꿈만같은 기회를 얻게 되었는데요,

지금 이렇게 합격수기를 작성하면서도.. 제가 우리 식구분들에게 이런 글을 남길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평생을 아나운서의 꿈을 갖고,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아왔던 저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 스피치랩 식구들에게 하나하나 해드린다는 마음으로 글자, 글자 정성드려 작성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준비과정 :

1987 2월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저에게는 꿈이 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택시기사, 다른 하나는 바로 아나운서!

사실, 택시기사의 꿈은.. 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어려서부터 자동차를 너무나도 좋아하고, 운전하는 어른들을 동경하던 제가 하루종일 운전을 하고싶은 마음에 “나는 택시기사가 되서 여기저기 하루종일 운전하며 살거야!”라고 했다는 말을 부모님께 들었었답니다.

그리고, 제가 기억하는 저의 유아기 부터 계속된 하나의 꿈인 아나운서!

꿈을 위해서 저와 부모님 모두 하나씩 마음의 준비를 해왔었습니다.

여기저기 앞에서 말할 기회가 생기면, 기회를 붙잡아 한번씩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해보고..

초등학교 시절, 제가 다닌 초등학교에서 단체구독했던 소년한국일보의 비둘기 기자 활동을 하면서, 언론 경험을 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진을 찍고, 기사를 작성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또한, 어른이 되어서 아나운서가 되기 위한 준비과정”이라는 생각에 무조건 열심히 했던 같아요..^^

그러던 1998! 프랑스 월드컵이 개최될 , 우리 대표팀의 후원업체인 나이키에서 주최한 Nike International Kid Reporter”에 선발되어, 소년한국일보 특파원 Nike International Kid Reporter 한국 대표로 보호자 없이 홀로 프랑스에서 취재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기성 기자분들에게 치이며 어렵사리 남들이 질문하는 내용을 녹음하고 받아적으며 간신히 취재를 하고..

숙소로 돌아오면, 다른 국가의 어린이 기자들과 함께 회의도 하고.. 비치된 컴퓨터를 활용해 한국에 이메일로 기사를 보내고..

지금 생각해보면, 역시.. 도대체 말도 안되는 영어로 세계 각국에서 명씩 친구들과 어떻게 대화를 나누고.. , 회의까지 했을까.. 싶은데, 뭐랄까요.. 머리와 마음이 딱딱하게 굳지 않은 “말랑말랑”한 아이들의 유대감으로.. 언어의 장벽을 뚫고 소통할 있었던 걸까요? 아무튼, 매일 즐겁게 “어른 흉내내기”를 하며 나름의 회의를 했던 같네요.. ㅎㅎ

파리 특파원 생활 , “꼬마”라는 저만의 장점을 활용해 삼엄한 대표팀 숙소의 경비망을 뚫고 어렵사리 따낸 홍명보, 최용수, 황선홍 선수와의 단독 인터뷰 자리에서 (어쩌면, 프랑스 경찰들이 ‘저 꼬마가 감독 아들인가? 했을 거에요;; ㅎㅎ 당당하게 경찰들과도 기념사진마저 찍었었다는;;) 저의 무모한 장담은 시작되었습니다. “아저씨! , 나중에 한국에서 유명한 아나운서가 될거에요! 다음에 봐요!

중학교에 입학해서, 학교 방송반의 아나운서로 활동을 하다가 우연히 서울시교육청에서 2 주최하는 “서울학생동아리한마당”이라는 행사의 개막식 MC 맡으면서, 본격적인 학생 MC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교육청에서의 대표 MC 같은 역할을 맡으면서, 고등학교 시절에도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위의 행사 외에도 스승의 행사라던지.. 기타 서울시교육청 행사의 진행을 맡으면서 발짝이라도 아나운서의 꿈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해온 결과, 학생 MC 부문 서울시교육감상, 한겨레신문사 사장상 (한겨레신문사가 서울학생동아리한마당의 후원을 했었거든요^^;) 등을 수상하는 영광을 가졌구요, 덕분에.. 3 수험생 시절,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특기생으로 수시지원을 했었지만.. 면접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그저 수능을 준비하게 되었어요 ^_^;; 기억에, 면접에 나온 교수님들도, 학생 MC 기자 활동 등으로 신문방송학과에 특기자로 지원한 학생으로는 제가 처음이라.. 당황하시기도 하고, 궁금한 점도 많으셨던 같더라구요.. 하지만, 제가 준비가 안되어서 그랬는지.. 결국 최종합격은 하지 못했어요 ^^;;

그리하여 2005, 수능을 통해 지금 제가 다니고 있는 한국외대 사범대학 프랑스어교육과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학교 홍보대사 “새로미” 활동을 하며, 학교 홍보에 나서고.. 축제에서 행사무대의 MC 맡는 , 제가 하고픈 아나운서라는 일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다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했었어요 ^^

어린시절, 프랑스에서 정작 프랑스어는 한마디도 모른 지냈던 것이 후회스러워 선택한 프랑스어! 고등학교 시절 2외국어로 일본어를 선택한 덕분에, 내에서 저는.. 그대로 바보와도 같은 존재였어요 ^^;; 외고출신 동기들의 월등한 프랑스어 실력을 동경하며.. 자그마치 4학점 짜리의 프랑스어 강독 강의에서 출석률 100%에도 불구하고 F학점을 받았다면.. 얼만큼 제가 프랑스어를 했었는지 어느정도 이해가 되시죠? ^^;; ㅎㅎ

아나운서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게 갖고자 영어와 일본어 외의 다른 외국어를 공부하고자 들어간 저와.. 이미 고등하교 시절 열심히 프랑스어를 공부했던 외고 출신 동기들 사이의 실력격차는 어찌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몰라요.. 어찌보면, 이런 선택을 제가 미련했던 것일 수도 있구요..

하지만, 1학년을 마친 군복무를 바로 하고서.. 제대 3일만에 군인머리를 하고서 파리로 어학연수를 떠나 무작정 프랑스인들과 부딪히기 시작했습니다. 무모한 도전이었죠.. 말은 안통하고.. 군대에서 사라져버린 경제개념 덕분에 파리의 물가는 전혀 반영하지 않은 생활비 책정으로, 저의 하루하루는.. 배고픔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월세를 내기 위해.. 하루 식사는 프링글스 , 콜라 .. . (그래도 나름, 칼로리 계산은 해서.. 그나마 소량/저비용으로 고열량을 내는 방법을 찾은거랍니다;; ㅎㅎ)

말도 통하는 외국인 학생이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것도 불가능이었기에.. 제가 그나마 생활비를 있는 방법은, 일용지으로 나르기 / 페인트 칠하기 등의 일들 뿐이었고.. 그러면서 학업을 병행하기엔 너무도 힘든 부분이 많았어요..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런 생활을 하다가 급성 맹장염으로 응급실에 실려가 수술까지 하고.. 힘든 시간들을 보내면서, 그래도 ‘나중에 아나운서가 되고나면.. 이런 에피소드들을 방송에서 얘기하면 좋겠네~ 나중에 토크쇼 나가면 해야지~ 라는 생각에;; 앰뷸런스에 실리면서도 핸드폰으로 셀카까지 찍는 바보짓을 했었죠 ^^;; (여담이지만, 파리에서 승강기에 시간 동안 갇힌 경험도 있었는데, 역시 같은 마음으로 증거사진까지 촬영했답니다;;)

나중에 나온 말이지만, 부모님도 그런 저를 놓고, “그래;; 천상 언론인이 되어야 겠다.. 아예, 전쟁터에서 셀카를 찍지 그랬니;; 라고 하시더라구요 ㅎㅎ

하지만, 남들보다 모자란 부분이 많지만.. 께서는 남들과 같은 기회를 주셨다는 광고 카피와 같이.. 평소 쓰기와 사진 찍기를 좋아하던 저는, 퇴원 후에 우연히 AVENUEL”이라는 우리나라의 쇼핑/패션 잡지의 파리 에디터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신나게 여기저기를 누비며 사진도 찍고, 기사도 작성해 한국으로 기사를 보내고.. 그렇게 파리에서도 “아나운서”가 되는 데에 어떻게서든 도움되는 일을 있게 되었어요. 덕분에 다양한 패션계 종사자들과 조우할 있는 계기를 얻을 있었고, 그들에게 번째 장담을 하게되었어요.

“나중에 한국에서 유명한 아나운서가 될테니까, 때가 오면, 다시 반갑게 인사하며 인터뷰 해요!

2009, 파리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2학년으로 복학한 저는, 2전공으로 정치외교학을 선택했습니다. 부모님께서도 “너가 정녕 방송을 하고싶으면, 신문방송학도 좋지만.. 세상에 대해서 많은 지식을 쌓는 것이 좋을거야. 방송은, 비록 모자라도 너가 실제 경험하면서 익히도록 하렴! 하지만, 사회공부는 취직하고 하기 어려울거야” 라고 조언하시고.. 역시 그렇게 생각해서 이런 선택을 했었는데요, 지금도 저와 부모님의 이러한 결정은 정말 내렸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게 하나씩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대해 공부를 하다, 저는 다시 무모한 도전에 나섰습니다. 모교와 아무런 교류도 없던 파리2대학 국제교류팀에 무턱대고 이력서와 편지, 지원동기서 등을 보낸거죠. “저 거기에서 정치를 배우고 싶어요!”라는 글과 함께..

학교 측에서도 처음엔 저의 이러한 편지에 당황하는 모습이었지만, 2009 여름에 제가 통역을 했던 클라이언트 분이 학교의 법대 교수님이셔서, 분의 도움과 저의 계속된 연락에 결국.. 저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무 협정 교류 학생”으로 받아주기로 했습니다.

2010, 그렇게 프랑스어와 정치학을 공부하며, 보다 넓은 시야를 가진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다시 프랑스로 돌아간 저는.. 외교통상부의 외교인턴 모집공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역시 ‘또 도전해볼까? 라는 마음에 지원을 했고, 그리하여 외교통상부 소속으로 모로코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인턴으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과의 진솔한 소통, 그러한 소통에 기반한 정보의 신속하고 빠른 보고의 중요성을 배우던 , 모로코를 방문한 반기문 UN 사무총장 내외분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만찬장에서 대사관 막내였던 저는 한번 장담을 했어요.

“나중에 한국에서 아나운서가 되고나면, 인터뷰 부탁드릴게요! 거절하시면 안되는거 아시죠?!

2011! 한국에 들어와보니, 제가 4학년 이라네요. 마음은 아직 2~3학년인데 말이죠.

조금씩 커져만 가는 부담감과 걱정들은 아나운서라는 꿈을 포기하려는 생각마저 들도록 만들었습니다.

주변에서는 그게 되겠냐며, 차라리 일반 기업에 취업을 해보라는 주변의 말을 들으면서 두려움은 커져만 갔죠.

그러던 중에, 용기를 내어 우리 스피치랩에 상담을 신청했고, 바로 6 종합반 수업을 수강하게 되었습니다.

그저 꿈만 꾸며, “동네 MC”로 보잘것 없는 경험들만 가득한 저에게 종합반 수업은 너무도 설레고 흥분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모든 수업내용들이 너무도 신기한 것들 투성이었고, 새로운 부분을 알게될 때마다 점차 저의 꿈에 가까워지는 듯한 생각에 뿌듯해지기도 했구요.

하지만, 모두가 느끼는 혼란과 정체의 시기가 저에게도 찾아왔습니다.

아무래도, 보잘것 없는 경험들이 저의 발전을 막는듯 했고, 처음에 느꼈던 빠른 발전속도는 찾아볼 없게 되었죠.

뉴스리딩은 나아지는 것이 없고, MC 멘트는 어렸을적 막연히 따라한 “싼티”를 벗지 못해 지적을 받았습니다.

수업에 들어오시는 선생님들의 조언 속에서 속뜻을 알아차리지 못한채, 그저 어떻게 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었죠.

특히, 목소리 톤과 관련해서는 들어오시는 선생님에 따라 다르게 매번 다르게 정도로 중심을 잡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선생님(장웅 선생님)께서 참고해보라며 추천하신 KBS 이규봉 아나운서의 뉴스를 매일같이 모니터링하고, 녹음해서 걸어다닐 때에도, 지하철에서도, 잠들기 전에도.. 마치 음악 듣듯이 들으며 지냈습니다.

이규봉 아나운서의 뉴스가 저도 모르는 사이 머리 속에서 하나의 로직으로 박히게 되면서, 조금씩 뉴스리딩에 자신감이 생겼고,

그러한 자신감은 MC, DJ 모든 분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때부터, 선생님들의 서로 다른 조언들이 결국엔 뜻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신뢰감을 있고, 힘차고 맑은 소리를 있는 ! 그것이 바로, 모든 선생님들께서 목소리로 말씀하시는 내용이었습니다.

톤을 낮추라는 선생님도, 높이라는 선생님도.. 모두, 제가 그러한 목소리를 갖도록 돕기위한 조언을 해주셨던거죠.

전형과정 :

1 (서류 + TOCT + 카메라테스트)

여느때와 같이 집에서 구독하던 중앙일보를 보던 어느날, jTBC 신입공채모집공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정신없이 2010년을 해외에서 보내다보니, 저에게는 영어 통번역 경험은 있으나 흔한 토익성적조차 없었고, 증명사진조차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모집요강에서 영어 공인 성적표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부랴부랴 이력서와 1500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며

결국, 2004 겨울, 대입준비로 보게된 유통기한 한참 지난 토플 성적을 첨부하고, 일반 스냅사진을 3*4 사이즈로 잘라서 제출했습니다.

TOCT 시험일, 그러한 시험의 경험이 없던 저는 바보같이 각종 수학 문제들을 일일이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가며 붙잡고 풀다가

마지막 10문제는 결국 운에 맡기고 찍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비판적사고력평가라는 명칭에 걸맞게, 사고력 평가 문제들로 가득해 별도의 준비가 현실적으로 어려울 같네요.

카메라 테스트날, 저는 아무 무늬가 없는 흰색 라운드 면티에 청바지 차림을 주문한 jTBC 원망하며 (개인적으로.. 평소에 그런 면티를 입지 않던 터라.. 너무도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어머니의 컨실러와 자외선차단제를 듬뿍 바른 얼굴로 시험장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남성 지원자들의 리딩/발성 모습을 저는 너무도 놀랐습니다. 그토록 남성 지원자들이 많을줄 몰랐고, 많은 지원자들이 탄탄한 리딩/발성 실력을 지녔을줄도 몰랐거든요.

‘아, 이렇게 읽고, 이렇게 소리내야 하는구나 연신 감탄했던 저는, 마치 스튜디오를 견학하고 다른 지원자들을 구경하는 마음으로 카메라 테스트에 임했습니다.

뉴스원고 1, MC원고 1개가 주어졌는데, 뉴스에서는 숫자와 다양한 이중모음들이 지뢰처럼 포진해있었고, MC원고는 미완성인 상태로 원고의 끝이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로 되어있었습니다.

다른 지원자들이 5분의 준비시간동안 소리내어 읽는 것을 들으며,

‘이 쯤에서 끊어읽고, 숨을 쉬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하며 저는 원고 장음을 일일이 체크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학원 수강 4주차로, 머리속에 장음이라고는 “한”나라당, “대”표, “장”관, “한”국 뿐이었기 때문에, 연신 앱스토어에서 거금을 주고 다운받은 국립국어원의 국어사전에서 검색을 해서 5 내내 장음만 찾았었어요.

스튜디오 앞에서, 속으로 MC원고를 읽으며 갈등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쉼표로 끝났으면.. 마무리를 내가 알아서 하라는 것인가? 아니면.. 그냥 문장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끝내야 하나? 결국, 저는 나름의 마무리 멘트를 덧붙여 완성된 문장으로 원고를 마무리했구요.

2 (필기 (작문) 시험)

기대 없이 경험삼아 구경하듯 1 카메라테스트 이후, 1 합격을 했다는 사실을 듣고서.. 기쁘다기보다는 덜컥 겁부터 났습니다.

뉴스리딩은 수업을 통해 경험해 보았지만, 변변한 스터디 하나 구하지 못했던 저로서는 작문의 벽이 너무나 높게 느껴졌습니다.

필기 시험을 앞두고 진행된 스피치랩의 필기특강을 통해 당장 시험에서 주의해야할 사항들과 신경써야할 부분들에 대해 특강 이후 선생님께 직접 이런저런 조언을 구하면서, 극적인 실력향상은 이루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피해야할 표현들과 실수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우면산, 유재석, 우유. 이렇게 3가지 제시어에 대해 각각 400 이내로 글을 쓰라는 문제가 나왔는데요, 서로 연관성이 없는 제시어들을 보며, “각각”이라고 나온 문제에 고마움을 느낀 것도 잠시.. 불현듯, 한번 하나로 엮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jTBC 9 뉴스”라는 프로그램에서 1 뉴스로 “우면산 산사태 피해복구, 주민들의 이기주의로 난항”, 2 뉴스로 “국민MC 유재석, 산사태 피해주민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남몰래 후원금 기부”, 3 뉴스로 “우유값 협상, 김연아의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프레젠테이션 패러디 UCC 급물쌀” 등의 내용으로 각각 400자를 채우고, 마지막 엔딩멘트로 “연예인, 월드스타들 보다도 포퓰리즘에 매달리는 정치세태”를 비판하는 글로 마무리졌습니다.

3 (실무면접)

필기시험을 끝으로 저의 도전기가 막을 내리리라는 저의 예상과는 달리, 고마운 jTBC 저에게 다시한번 기회를 주었습니다.

3 실무면접을 앞두고, 원장님과의 면접대비수업을 통해 많은 것들을 준비했었는데요,

3차에서는 3 1조로 편성, 면접관들과의 인터뷰 형식으로 면접이 진행되었습니다.

제가 속한 조에서 1번이었던 저는, 첫번째로 자기소개를 하게 되었는데요, 야심차게 학급원들과 선생님들과 함께 준비한 자기소개를 절반도 하지 못한채, 20초만에 “됐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끊기게 되었습니다.

(자기소개 역시, 하나의 프로그램 형식을 차용해, 저에 대해 소개하는 방법을 활용했습니다.)

예상과 처음부터 틀어지게된 면접 분위기에 많이 당황했고, 한편으로는 화도 났지만..

억지로라도 미소 지으며, 쿨한척, 괜찮은척 했던 같네요^^;;

자기소개에 이어 간단한 신변관련 질문들이 오간 , 명의 지원자들에게 순발력을 요하는 미션이 주어졌습니다.

“매일 아침 7, 생방송을 진행한다. 그런데, 오늘은 출근길에 어떤 사건이 발생해서 부득이하게 생방송 5분전에 간신히 스튜디오에 들어왔다. 숨돌릴 틈도 없는 당신! 어떻게 방송의 문을 열겠는가?

머리가 빈것 같았습니다. 자기소개가 중간에 끊긴 충격이 가시기 전에 이런 미션으로 다시 충격을 받게 되었던거죠.

어떻게 했는지 자세하게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다음과 같았습니다.

상황은 “수능 시험일”!

다른 모든 분들의 출근시간이 조정된 반면 방송시간은 예외가 없었다. 그런데, 출근길에 애타게 택시를 기다리는 모녀를 보고 3 시절 발을 동동구르던 저의 모습이 떠올라, 고사장까지 태워드리고 오는 길이다. 모두들 예전의 추억을 떠올려보자. 우리모두 대한민국의 모든 아들, 딸들이 긴장하지말고 자기 실력을 마음껏 뽐낼 있도록 화이팅 하면서, 오늘 방송 시작하겠다.

4 (업무역량평가 + 인성평가)

자기소개의 충격에 휩싸여 어떤 기대도 하지 않던 저에게 너무나도 기쁜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3차까지는, 자체 헤어 스타일링 메이크업 (그래봤자; 혼자 대충 머리에 왁스 바르고, 어머니 화장품 듬뿍 바른 것이지만) 으로 버텨왔는데, 이제는 안될 같았습니다. 그래서, 스피치랩에 헤어와 메이크업과 관련해 조언을 구하고, 제가 입을 옷에 대해서도 세세히 조언을 구해서 선생님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면접에 앞서 예정에 없던 “인성평가”가 새롭게 전형에 추가되었습니다. 인터넷으로 정해진 시간내로 답변하는 방식의 간단한 시험이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문항별로 답변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개인적으로 고민해볼 문항들이 많아서 오히려 시간의 압박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4 업무역량평가에서는 한명씩 들어가 다수의 면접관들을 상대해야만 했습니다.

그러한 구도 자체가 저에게는 상당한 압박으로 느껴졌는데요, 3 면접보다 더욱 날카로운 질문들이 오갔습니다.

우선, 개인별 30분의 준비시간과 함께 3가지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첫번째 과제는, 오세훈/곽노현 2인의 사진만 인쇄되어있는 A4 용지에 “위의 인물들과 관련된 이슈에 대한 1 스피치”였고,

두번째 과제는, “가요 가사에 대한 19 판정”과 관련된 신문기사 스크랩에 대해 “시청자에 1분간 기사를 설명”하라 였고,

세번째 과제는, 평온한 시골을 배경으로 하는 “인간극장” 풍의 내레이션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저는 프로그램화 했는데요,

과제1번은 “시사 반찬”(콘셉트 : 우리가 식사시간에 반찬처럼 식탁위에서 이야기하는 시사 이슈들을 이야기하하는 가벼운 분위기의 시사 프로그램),

과제2번은 “시사 돋보기”(콘셉트 : 다양한 사회 이슈들에 대한 인쇄매체의 보도들을 분석/설명하는 프로그램) 라는 이름을 붙여서 오프닝 멘트를 하는 형식을 사용했습니다.

과제3번은, 내레이션만이 아니라 마치 모노드라마를 하듯이, 내레이션 도입과 마무리 부분의 등장인물 대사 역시 함께 함으로써 어색함을 줄여보고자 개인적으로 노력을 했습니다.

위의 3가지 과제들은 카메라를 향해 서서 진행했고, 과제가 끝나면 미리 준비된 의자에 앉아 강도 높은 면접이 진행되었습니다.

기본적인 신상과 관련된 질문들을 비롯해, 과제와 관련된 사회 이슈에 대한 심층적인 질문, 아나테이너 이슈에 대한 질문 등이 오갔고,

저의 경우에는 저의 “뉴스/시사 쪽으로 편중된 이미지”에 대한 압박질문이 이어졌습니다.

5 (최종면접)

계속되는 예상 밖의 성적에 하루하루 신기해하며 지내게 되었습니다. 9명의 지원자 (남자 2, 여자 7) 최종면접에 임했고, 3 1조로 면접을 진행했습니다. 면접에는 회장단을 비롯한 고위 임원진이 배석했구요.

가벼운 신변관련 질문들이 오갈 것으로 생각했던 예상과 달리, 임원진의 1 아나운서에 대한 기대와 관심 때문이었는지, 앞선 3/4 면접에 버금가는 긴장감이 느껴졌습니다.

면접은 각자 자기소개와 아나운서가 되고싶은 이유에 대해 공통 질문을 던지고, 개별 질문 순서로 이어졌습니다.

저의 경우, 부가적으로 연평도 포격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에 대한 저의 생각을 묻는 질문, 롤모델인 아나운서 등을 물었구요, 저와 같은 조에 속한 2명에게는 개인의 출신 학교나 자기소개서 상의 특이한 경험에 대해 묻는 질문이 오갔습니다.

이후, 회장님의 갑작스런 과제부여가 있었는데요, 앞서 명의 여성 지원자에게는 각각 아침방송, 저녁방송의 오프닝을 맡긴 반면, 저에게는 jTBC 개국 특집 생방송 무대 진행을 과제로 주셨습니다. (당시, 저는 ‘아, 그럼 나는 점심방송일까? 아니면.. 뉴스? 시사? 이렇게 생각하던 터라, 회장님의 주문은 정말 연평도 질문과 버금갈 정도로 저의 정신을 혼미하게 했습니다.)

우선, 최종면접에 임하면서 저는 여러 질문에 대한 답변 속에서 저의 패기와 젊음에 역점을 두어 답했습니다. 또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TBC jTBC 다시금 탄생한다는 점을 강조했는데요, 개인적으로 “출발/시작”을 강조한 지원자들과 달리 “재탄생, 역사/전통의 계속”을 강조한 것이 임원진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마무리 :

이렇게 “서류/필기/카메라테스트작문심층면접인성평가/업무역량평가최종면접”으로 이어지는 5차례의 전형단계를 거쳐 4인의 jTBC 공채 1 아나운서가 선발되었습니다.

오랜시간 아나운서의 꿈을 향해 달려오신 분들과 함께 전형을 치르면서 정말 많은 것들을 얻고, 배웠던 같습니다.

언제나 전형에서 탈락하더라도, 이러한 선배들의 멋진 모습을 보며 배울점을 하나 하나 느낄 때마다, 정말 주고도 없는 가르침을 받았다고 느꼈기에 만족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제게 평생을 꿈꿔온 일을 있는 기회마저 얻게 되어 너무도 행복하고, 지금까지 너무도 많은 가르침과 도움을 원장님 이하 스피치랩 선생님들과 6 종합반, 스포츠캐스터반 식구들, 그리고 전형 중에 잠시나마 이야기를 나눌 있었던 여러 선배님들에게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네요.

이번 전형을 치르면서, 개인적으로 깨달은 바가 있다면.. 선생님, 메이크업 담당자, 헤어 담당자 우리를 도와주시는 모든 프로 분들의 조언에 절대적인 신뢰를 가져야 한다는 점이라고 있습니다.

조언들이 서로 상이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끝은 모두가 동일합니다.

신뢰감을 주는 목소리와 외모, 안정감이 느껴지는 톤과 스타일, 여유가 느껴지는 템포와 제스쳐

이를 갖추는 방법은 여러가지일지라도, 지향점은 결국 모두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모든 분들은 우리 모두가 멋진 언론인, 방송인이 있도록 고민하시고, 노력하시는 분들입니다.

비록, 역시도 여전히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자신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조언에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받아들일 , 진정한 발전이 이뤄질 있을 같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많은 조언과 도움을 구하면서 끊임없이 발전하고자 노력하는 아나운서가 되겠습니다. 읽어주신 스피치랩 식구 여러분, 감사합니다.